마지막날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정리해 놓은 짐을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넣을 것을 모두 넣었다. 체크아웃을 위한 준비는 모두 된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짐을 둔 채로 오사카 성을 보기로 하였다. 오사카 성 근처의 숙소를 정해 놓았으며 근거리의 오사카 성은 꼭 보고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 성은 호텔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처음에는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들고 가려고 했지만 짐의 무게나 부피를 생각하니 일찍 다녀와서 체크아웃을 하기로 하였다.
호텔에서 나와 육교 쪽으로 갔다. 육교에서 오사카 비지니스 파크 방면으로 내려갔다. 휴대폰에 구글 지도를 열어 놓고 움직였다. 그런데 구글 지도에서 알려 주는 오사카 성 방향과 도로에 표시된 오사카 성방향은 조금 달랐다. 구글에서는 지하철 오사카비지니스파크역 방향으로 간 후 동쪽의 다리를 건너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도로 표지에는 남쪽으로 직진을 하라고 되어 있다. 고민을 하다 도로 표지를 따르기로 하였다. 걷다보니, 옆에 육교가 스미모토 미쓰이 은행 오사카 비지니스 파크 출장소까지 연결되어 있다. 신호를 건너서 계속 가다보니 공연장 같은 것이 보이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간판을 보니 시어터 브라바(シアターブラヴァ, Theater Brava!)라고 되어 있다. 브라바(brava)는 공연에서 격려를 할 때 쓰는 이탈리아말인데, 여성 솔로 연주자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참고로 브라보(bravo)는 남성 솔로 연주자에게 사용하고, 브라비(bravi)는 남성 복수 연주자나 혹은 혼성 연주자 일 때, 그리고 브라베(brave)는 여성 복수 연주자에게 사용한다. 극장의 이름이 특이하다. 주로 여성 솔로 연주자를 위한 극장인가? 아니면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극단이 주로 공연을 하나? 일본에는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공연인 가부키(かぶき), 정확히는 야로가부키(野郎かぶき)가 있는 반면 여성들이 모든 역할을 맡는 극단인 다카라즈카(정식 명칭은 다카라즈카 가극단, 宝塚歌劇団)이 있다. 게다가 다카라즈 가극단은 한큐전철의 창립자인 코바야시 이치조(小林 一三)가 창설을 하였다. 한큐전철이 오사카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그 심증은 더욱 깊어졌고 마침 오사카의 여러 곳에 공연 포스트도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아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다카라즈카 시와 도쿄의 치요다 구에 전용 극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브라보나 브라베가 아닌 브라바를 이름으로 사용했을까?
극장 근처에 가 보니 차가 다니지는 못하지만 사람은 건너 다닐 수 있는 인도교가 설치되어 있다. 인도교를 통해 강을 건너니 돔 형태의 큰 건물이 나온다. 오사카 성 홀 이다. 정식 명칭은 오사카 성 국제 문화 스포츠 홀이지만 그냥 오사카 성 홀(大阪城 ホール)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은 오사카 성 축성 400년을 기념하여 지은 다목적 건물이라고 한다. 콘서트, 실내 스포츠, 이벤트 행사가 열리며, 그 날도 무슨 행사가 있는지 몇명의 사람들이 아침인데도 줄을 서 있었다. 서있는 모양이나 가지고 있는 장비(?)를 등으로 볼 때 장기적인 기다림을 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걸어가니 닛산 자동차 신차 발표회라는 배너를 볼 수 있었지만 설마 그것 때문에 기다리지는 않는 듯 하다. 오사카 성 홀의 옆에 복도처럼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니 오사카 성의 해자(성의 주변에 공격을 어렵게 하기 위하여 땅을 파서 물을 채워 넣은 것)가 보인다. 공원 처럼 꾸며놓은 곳에는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다. 해자의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무심한 오리들만 해자의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해자를 따라 길이 조성되어 있고 그 길을 따라가니 오른 쪽에 무료 휴게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천막이 조성되어 있다. 무료 휴게소라는 것은 음식을 팔기 위해서 필요한 시설 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더 가니 호텔의 1층에 있는 디자인 사무실 유리 벽에서 본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 회사가 이 게임을 개발 한 것 같다. 가까이 가보니 3D로 오사카 성 전투를 체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고 금액이 500엔이라고 되어 있다. 의상도 빌려 준다는데 3D 체험과는 별도인 듯 하다. 의상을 빌려 주는 것은 어제 교토에서 본 의상 체험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야 당연히 무시하고 오사카 성으로 들어간다. 첫번째 해자를 넘을 수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셀카봉을 이용하여 오사카 성을 배경으로한 가족 사진을 찍었다. 올라가는 길에 큰 돌들이 모여 있는 곳(각인석 광장)을 지나는데 수학여행을 온 일본 고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대충 듣고 있다. 학생들은 어디서나 큰 차이는 없다. 이제부터 계산이 시작되었다. 계산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올라 갈 수 있었다. 잠시 오르니 오사카 성의 북쪽 면이 보인다. 가까이서 봐도 별 생각은 없다. “좀 화려하네”라는 생각 만 든다. 성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많았지만 중국 사람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몇몇 우리나라 아주머니(?)들도 단체 관광을 오신 듯 하다.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중국 분인 듯 한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는데 손은 모양과 자세가 아주 재미 있었다. 뭔가 우리나라 70년대나 80년대라면 있었을 법한 포즈를 취한다. 현서와 윤서도 포즈가 재미 있다며 나중에 흉내를 내기도 하였다.
오사카 성은 효고(兵庫)현의 히메지(姫路)성, 쿠마모토(熊本)현의 구마모토(熊本) 성과 함께 일본에서 유명한 세 개의 성 중 하나이다. 오사카 성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임진왜란의 장본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건설하여 자신의 거첨 즉 본진으로 삼았으며 이후 그의 차남 이였던 토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 )가 이주하여 한동안 거주하였다. 그러나 토쿠가와이 이에야스(德川家康 )가 종명사건을 빌미로 오사카 성을 공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성의 엄청난 자체 방어력 등으로 함락이 어렵자 토쿠가와 측에서 화해를 요청하면서 체면을 살려 달라는 빌미로 해자 등을 철거하였다. 당연하겟지만 해자 등이 철거된 성은 방어력이 형편없어졌고 원래부터 이를 노린 토쿠가와 측은 다음해인 1615년 다시 오사카 성을 공격하였다. 결국 6월 4일 오사카 성은 함락되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 이후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새로 오사카 성을 재건하지만 토요토미 가문의 성벽과 해자를 파괴하고 새롭게 돌을 쌓는 방식으로 토요토미 가문의 흔적은 지워버렸다. 지금은 오사카 성은 1931년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오사카 성은 겉으로는 전통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철큰 콘크리트에 엘리베이터까지 들어서 있어 전통적 양식의 일본성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오사카 성은 입장료가 없다. 다만 천수각에 들어 갈 때에는 입장료를 받는데 그것도 성인에게만 입장료를 받고 있다. 당연히 나와 아내는 들어가 볼 마음이 없었다. 오사카를 내려다 보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올라갈 마음은 없었다. 아이들은 무료라니 올라가 볼 것을 권했지만 아이들도 별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 걸을 만큼 걸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더욱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체크 아웃 시간 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걸어가기로 하였다. 온 길을 그대로 돌아 가기로 하였다. 오사카 성 홀 앞을 다시 지날 때 보니 줄이 조금 더 길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늘어난 것이 아닌 걸 보니 앞에 줄서 있는 사람은 뭔가 열성적인 팬인 듯 한다. 다리를 다시 건너서 가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서 근처에 있던 호텔 뉴 오타니로 들어간다. 아래 층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상가인 듯 한데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화장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경비원이 지나가기에 화장실을 물으니 직접 대려다 준다. 화장실에는 좌변기 외에 동양식 변기가 있다. 화장실의 상태는 우리 호텔만큼 깨끗하지는 않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노상에 자전거 주차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놀라운 것은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잠글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하여 요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자전거 주차장에 빈 자리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꺼내서 체크아웃을 하였다. 어제 빌렸던 플러그 어댑터도 반납하였다. 호텔비 외에 추가로 결제할 금액이 아이들 아침 식사 금액인 5400엔이다. 하루하루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게 모이니 제법 큰 금액처럼 보인다. 짐을 메고 나오니 무게가 제법 나간다. 아이들이 사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서 다시 다이에로 갔다. 시간이 제법 되었는데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다. 다이에에서 과자와 음료수 등 몇 가지를 구매 한 후 교바시 역으로 갔다. 다이에가 최대의 식품판매점이라는데 여기서 사갈 것은 모두 사가는게 좋은 것 같은 생각도 했지만 도톰보리에 있는 돈키호테가 워낙 싸다고 하니 필요한 것은 그곳에서 사기로 했다. 그래봐야 우리가 살 것은 현서와 윤서의 친구들에게 줄 과자가 전부다.
우선 난바역으로 가기 위해서 게이한 메인라인을 타고 요도야바시 역까지 간 후 그곳에서 지하철 요도야바시 역으로 걸어가 미도스지선을 탔서 난바역으로 갔다. 난바에서 내린 우리는 짐부터 맡기기로 하였다. 난바역에는 코인로커도 있지만 사람이 직접 맡아 주는 곳도 있다고 하였다. 우리짐의 양으로 볼 때 코인로커 하나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맡아 주는 곳을 찾으려 했지만, 난바역의 복잡함은 이를 허락치 않는다. 표 끊는 것을 도와주는 역무원에게 짐을 맡길 곳을 찾는다고 물으니 코인 손을 뒤쪽으로 가리키며 코인로커로 안내한다. 역무원일 알려준 코인로커에 가니 다양한 크기의 로커가 많이 있다. 다행이다. 잘 맞추어 보니 500엔 짜리 코인로커 하나면 모든 식구의 짐을 다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혹시 코인로커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주위를 돌아 보니 20번(?) 출구 바로 앞이다. 짐을 넣고 가벼운 차림으로 출구를 따라 올라 지상으로 갔다. 출구는 큰길이 아니라 골목이다.
골목을 나가서 도톤보리(道頓堀)쪽으로 갔다. 도톤보리라는 지명은 토요보리강(東横堀川)과 기츠강(木津川)을 연결하는 길이는 약 2.5km의 운하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운하는 에도시대 초기 야스이 도톤(安井道頓)과 야스이 도후쿠(安井道卜)라는 형제 또는 사촌이 건설했다고 알려져 왔지만 야스이 도후쿠의 후손들이 1965년 토돈보리 강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오사카시를 상대로 제기한 재판과정에서 몇 가지 다른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일을 시작한 사람은 야스이 도톤이 아니라 나리야스 도톤(成安道頓)이며 나리야스 도톤이 1615년 오사카 여름전쟁(大阪夏の陣)에 참전하여 전사하였고 이후 이 사업을 야스이 도후쿠가 인수하여 완성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오사카성을 지배하였던 마쯔다이라 타다아키라(松平忠明)가 나라야스의 업적을 평가하여 도톤보리로 이름 지은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곳은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을 하거나 혹은 일본 축구팀이 월드컵16강에 진출할 때 ‘도톰보리 다이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강에 뛰어 들기도 한다. 물론 경찰들은 안전상의 문제로 이를 금지하지만 팬들은 이를 무시하고 뛰어 든다고 한다.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뛰어들어 수영을 할 만한 수질은 켤코 아니다. 실제로 한신 타이거스가 2003년 센트럴 리그에서 우승을 하였을 때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피부병과 눈병으로 오랜 기간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추가 2015년 신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몇몇이 뛰어들었고 그 중 여행 중이던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살아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아프다. 그 강물 상태를 보면 결코 뛰어 들만한 곳이 아닐텐데....)
도톤보리강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주위에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다. 다리 옆에 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산책로로 갔다. 어제 밤에 사진을 찍을 때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구리코 전광판이 보인다. 어젯밤 조명 때문에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현서와 윤서를 그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잠시 아래로 걸어가니 독특한 외관을 가진 돈키호테가 나타난다. 도톰보리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꼽는 곳이 돈키호테라고 한다. 건물외부에 관람차가 설치되어 있는 독특한 외관을 가진 건물인 돈키호테는 다양한 물건을 싸게 판매하는 잡화점이다. 건물 밖에 설치된 관람차는 이제 더 이상 운행되지 않는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건물외관이 공사 중이어서 처음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뒤쪽으로 돌아오라는 안내판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선물(?)을 사려고 했기 때문에 처음 공사 중인 것을 보고 잠깐 소위 ‘맨붕’에 빠지기도 했다. 도톤보리에 있는 돈키호테는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창고형 할인점답게 상품이 빽빽하게 쌓여 있다. 1층에는 과자와 식품이 있었고 가자마자 맨 처음으로 찾은 것이 우마이봉과 가루쿡이다. 예상 했던대로 두 가지 모두 지금까지 알아본 곳 중 최저가이다. 우마이봉과 가루쿡을 나누어 줄 만큼 샀다. 구매한 과자를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기에는 좀 그래서 비닐쇼핑백을 사려고 하였지만 찾을 수 없다. 2층에서 5층까지 모두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다. 물론 가방을 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구경을 다녔다. 가전제품부터 성인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결국 물어 물어 가방을 찾았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비싸다. 가방 하나에 거의 10000원 가까이 한다. 아내는 신사이바시 쪽에 100엔샵인 다이소에서 사면된다면서 그리로 가자고 한다.
나도 그 쪽에서 봐둔 것도 있고 해서 그리로 가기로 했다. 어제 밤에 본 상가와 낮 시간에 보는 것도 또 다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아내와 현서는 다이소에 가방을 사기 위하여 위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일층에서 이것 저것 구경을 했다. 음료수를 두 병 골라 기다리나 아내가 내려온다. 한 개에 100엔이다. 아예 하나 더 사라고 하였다. 음료수 값이나 차이가 없다. 아까 돈키호테에서 본 것과는 크기도 차이가 별로 없고 다만 지퍼가 없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지퍼는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가방을 사서 바로 옆에 있던 눈독을 들어던 과자가게에 왔다. 사고 싶은 것 몇 개를 샀다. 그 중 사탕수수 원당과 와사비 과자는 몇 개 더 사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다시 난바 쪽으로 걸어와서 짐을 넣어 둔 코인라커로 갔다 못 찾을 까봐 걱정을 제법 했는데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짐을 찾아 우리는 가마타케(釜たけ)우동을 찾아 나왔다. 지도에서 이리저리 찾아 보고 대략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였다. E9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 지하상가 내의 표지판을 확인 했지만 E9는 보이지 않는다. 표지판 중 9번 출구라고 되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E가 Entrance의 약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9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오니 상당히 당황스럽다. 골목길의 조그만 출구이다. 나중에 다시 찾은 E9역시 그리 크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오른쪽으로는 고가도로가 보이고 정면에는 난카이 전철의 난바역이 보인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잘못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바역을 따라서 걸어가니 E9번 출구가 보인다. 그 곳을 기점으로 골목길을 찾아 들어간다. E9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첫번째 골목 말고 두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서 걷다보니 첫번째 네거리에서 화월당 본점이 나오고 다음 네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그런데 또 네거리가 나올 때까지 가마타케 우동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왼쪽에 있다고 하였는데 찾기을 수 없다. 지나쳤다 보다. 돌아서서 몇 발자국 가지 않아 가마타게 우동이 보인다. 일단 간판이 없다. 유리창에 가마타게우동이라고 붙어있고 바깥에 깃발로 크게 우동이라고 히라가나로 쓰여 있는 것이 전부다. 가게는 그리 크지 않다.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메뉴판의 맨 뒤편에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표시되어 있다. 나는 원하는 것이 국물이 들어있지 않은 우동을 원했는데 그곳에는 그 우동이 없다. 앞쪽으로 넘겨보니 내가 원하는 키조유(生醤油: 날간장)우동(650엔)이 있다. 아내는 날이 차가워서 국물이 있는 우동이 먹고 싶다고 한다. 아내가 주문한 것은 치쿠(玉天: 어묵과 계란반숙)우동 (780엔)이며 아이들은 둘 다 에비텐(海老天ぶっかけ: 새우튀김)우동 (800엔)이다. 아내의 우동이 맨 먼저 왔고, 다음 아이들의 우동이 왔다. 둘 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아이들의 새우튀김을 먹었는데 상당히 맛이 있다. 내가 시킨 키조유는 맨 마지막에 왔다. 종업원은 우동을 가져다 주면서 나에게 어떻게 먹어야 할 지 설명해 준다. 테이블마다 튀김고명(텐가스)가 놓여있어서 원하는 만큼 넣어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간장을 조금 뿌리고 텐가스를 약간 넣어 비비기 시작했다. 젓가락에 느껴지는 면발이 매우 탱탱하다. 면을 한가닥 집어서 먹어보니 면발이 장난이 아니다. 아내도 자기 것 보다 내가 시킨 키조유가 더 맛이 좋다고 한다. 우동을 먹는 동안 다른 손님들이 많이 들락날락한다. 우리가 다 먹어갈 무렵에는 한국인 관광객인 여자 두 명이 와서 냉우동을 시킨다. 이 집에서 진짜 유명한 것이 냉우동이란 말을 읽은 기억이 나다.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가게를 나와서 나와서 난바역 쪽으로 걸어간다. 그곳에는 식재료와 식당용품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물론 맛이 있어 보이는 식당도 많이 있다. 아쉽다. 배가 크거나 시간이 많으면 여기 저기 들어가서 맛을 보고 싶다. 오코노미야끼를 만드는 기계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기차시간이 다되어 난바역으로 갔다. 난카이선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난카이선 열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은 아쉽기만 하다. 3박 4일이라는 시간은 오사카와 교토를 살펴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기차는 달려 간사이 공항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위를 달린다. 다리 옆의 바다는 파도가 제법 높다. 간사이 공항에 내려서 위로 올라오자 우리가 입국할 때 인지하지 못했던 작품이 보인다. 버리는 기차표를 이용하여 유명한 그림을 모사한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다시 처음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던 간사이 공항 제2청사로 가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한다. 피치항공에서는 승객이 스스로 수속을 할 수 있는 단말기기 설치되어 있다. 준비한 바코드를 가져다 대었지만 인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말썽을 부린다. 데스크에 가서 줄을 섰다. 직원은 우리가 일정을 변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단히 수속이 끝났다. 기다리는 동안 상점으로 갔다. 남아있는 얼마 되지 않는 일본 돈을 선물로 바꾸려는 생각이었다 로이스 초콜렛을 사고 싶었지만 아내는 그다지 원치 않는듯하다. 로이스 초컬릿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자분이 “이게 면세가격이 적용된 건가요?”라고 물어본다. 물론 아닐 것이라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기왕이면 면세된 가격이 나을 것 같다. 면세구역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와 아내는 면세점으로 갔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결국 산 것은 실리콘을 된 동전지갑이다. 아내도 쓸 수 있고 현서도 쓸 수 있는 것이라 한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한다. 우리 차리는 갈 때와 마찬가지로 뒤쪽이다. 비행은 순조롭다.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몇번의 가벼운 난기류를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공항이 우리를 반긴다.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옆에서 오시던 아주머니가 4호선을 환승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본다.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시다. 서울역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고 말씀 드리니 한숨을 내쉰다. 우리도 4호선을 타러 가는데… 아내는 오자마자 문상을 가야 한단다.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아내는 내리고 나와 아이들은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시간이 한참 늦었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사가지고 혼 마법 지팡이와 선물을 정리하기 바쁘다.
윤서와 현서는 결국 내가 폭발 하도록 만들고 만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아직 어려서 일 것이라 믿고 싶다. 너무나 짧고 아쉬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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